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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산악연감 창간호 보도자료(마운틴 월드; 2009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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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2,893회 작성일 09-07-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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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산악연감 창간호 출간
반백년 넘는 부산지역 산악사 한 눈에

부산의 산악인, 부산산악포럼의 김정실 (62세) 대표가 5 명의 편집위원( 이종길, 김철우, 강덕형, 홍보성, 황계복) 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부산산악연감 창간호를 펴냈다. 이 연감에는 항도 부산의 소중한 산악 문화와 산악인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산을 통한 호연지기를 배양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이상을 실현 하고져 분투한 산악인들의 불굴의 정신과 애환의 눈물이 배여 있다.
부산산악포럼 김정실 대표

발간 동기를 말하는 김정실 대표는 선배 산악인을 존경하고 후배들을 격려하면서, 산악문화 창달을 목표로 2003년 부산산악포럼을 발족시킨 후, 선배님들이 몸담았던 산악회와 단위 산악회 회원들이 30 여년간 활동하면서 축적된 산악관계 자료, 산악강연, 세미나, 사진전, 기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비로소 금번에 588쪽에 이르는, 산악연감 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고 술회 한다.

현재 38명에 이르는 부산산악포럼 회원들은 십시일반 기금 조성에도 자발적으로 힘을 실어 주었고, 17명에 이르는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부터, 도움을 준 후원금으로 출간이란 결실을 맺게 되었다며 공을 이들에게 돌리기도. 특집1의 "부산등산사 재조명" 편의 부산근대등산의 선구자 신업재란 글이 눈에 띈다.

암울했던 시대 부산에 근대등산 운동이 태동하던 시기에 활발한 등산활동을 한 몇 안 되는 선구적인 산악인 신회장은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29년 3월 금강산을 처음 오른 뒤부터였다고 한다. 해방이 되기까지 29차례 금강산을 찾았으며 암벽등반은 31세이던 1936년 북한산 인수봉에서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한국인 클라이머가 10여 명에 불과했고, 백령회가 1937년 창립된 것을 생각하면 백령회 대부였던 엄흥섭 이나 김정태, 양두철 등과 어울려 등반을 많이 했던 것으로 짐작되나 누구와 함께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리산 회고라는 글에서 지리산에 처음 오른 것은 1931년 5월 하순이었고, 그후 1971년 8월의 한산 부산지부 주최 지리산 종주등반까지 합치면 모두 33회에 걸처 올랐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해방되기 전까지 최소한 10여 차례는 지리산에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산악회 부산지부에서의 30년 회고라는 글에서 광복 전의 등산 환경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제하 극히 적은 수의 우리 산악인들은 등산활동을 통하여 민족적 감정과 목적을 달리하여 북은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한라산까지의 명산은 빠짐없이 등반함으로써 우리 국토가 아름답고 수려한 금수강산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 조선산악회 (회장 일본인)에 속하여 있었으므로 큰 행사에는 언제나 한인과 일인이 행동을 같이하는 형편이었으며 비록 수는 적으나 언제나 가슴 깊이 대항 의식과 산악인으로서의 정신, 체력, 기술에 있어서 뒤떨어지지 않고 단결했으며,
그 당시는 수가 적어서 개인 혹은 2, 3인씩 큰 산에 오르면 그 사실이 전 산악인에게 알려졌다. 우리는 봄에서 가을까지 그 유명한 금강산을 등산할 때도 종일토록 두서너 등반팀을 만나기 힘들었으며, 지리산을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종주등반 해도 도중에 한 사람의 등산인도 만나지 못하고, 다만 약초 캐는 사람과 포수를 어쩌다 맞날 뿐이었다."

그 때의 우리 명산들이 얼마나 신비에 싸여있었음을 가히 짐작이 간다.

신회장이 처음 지리산에 올랐던 1931년 이라면 우리 땅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처음에는 개별 등산활동을 해오다가 몇몇 조선인들을 끌어들여 조선산악회를 만들고, 총독부 지질조사소 소장인 다치이와를 회장으로 앉히고 한반도 전역의 산에서 개척등반을 시작한 해다.

"일본인 중심의 조선산악회는 조선사람의 입회를 극히 제한하여 초기에는 박래현,배석환 두 명이 회원이었고, 1937년 엄홍섭 (제화업)과 김정태가 들어가 4명으로 늘었으며 1939년께 회원 50명 중 조선 사람은 5-6 명에 불과 했다. 이 시기에 우리의 등산 활동은 일본인들의 등산활동에 참가 또는 독자적인 활동을 병행하면서 등산 방법과 지식을 배워 저력을 키워왔다.
국내 산에서 일본인들의 독주에 대한 민족적인 자존심 때문에 1937년 한인들만의 몇몇 산악동지가 일경의 눈을 피해가면서 백령회를 조직했다. 백령회의 '백'은 백의민족과 백두산 그리고 순결을 뜻하는 백이며 '령'은 높은 뜻과 이상의 산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하 생략-

[연감 주요목차]

- 발간사 부산산악여감을 펴내면서.
-특별기고
/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등산활동 회고/ 나는 등산가다/ 부산.경남지역 초기 산악운동과 산악문화의 방향/ 부산의 산악문화 발전을 위하여, 기록으로 마무리해야 할 산의 정신/ 산에서 나는 생각한다/ 히말라야에서 맞난 부산 산사나이들의 도전과 용기/

특집1 / 부산등산사 재조명. 특집 2 / 부산산악계 히말라야등반 약사. 특집 3/ 인물 재조명 /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신업재 회장. 애국지사 먼구름 한형석선생. 해외원정 등반 중 사망한 부산산악인. 특집 4/ 산악단체의 사회적 역활. 특집 5 / 부산지역 등산학교 현황. 특집 6 / 산악스키를 통한 알피니즘의 구현. 특집 7 /부산의 진산 금정산. 2008년 부산 산악계 결산 ./ 산악문화행사. 산악스키대회. 빙벽등반대회.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일반등산대회. 산악마라톤대회. 개척등반. 해외원정.

원정보고 /다이나믹 부산 2008 마칼루.로체원정대. 동아대. 부산대 엘브르즈 원정대. 에베레스트등반. 행사 / 제4회 부산산악문화축제. 토론회 / 부산산악문화축제 발전방안에 대한 논의. 추모 / 2008 유명을 달리한 부산 산악인.

논문1 / 카라코람연구. 논문 2 /트랜스 히말라야 탐사.
서평 / 2008 국내 신간 산악도서.

2008 부산 산악단체 결산. (사)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 (사)한국산악회 부산지부. 부산학생산악연맹.
소개 / 부산산악포럼.
도움을 주신 분들.

2009년 03월 17일 (화) 이훈태 기자 master@mountainworl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