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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2010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2>캉첸중가 등정기-2신 악전고투/캠프4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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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761회 작성일 10-04-13 09:44본문
2010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 <2> 캉첸중가 등정기-2신
악전고투… 캠프4 진출, 정상 등정만 남았다
베이스캠프서 고소적응 후 교두보 마련 나서
등정 10일만에 캠프4 확보, 크레바스·복사열 난관
전기는 태양열로, 식수 확보는 눈 얼음 녹여 해결
정상부 -35도·산소 부산의 30%… 14일께 도전
캉첸중가(8586m)는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세 번째로 많이 등반하는 산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에는 무려 74개 팀이 몰렸다. 그러나 캉첸중가 초등 50주년인 2005년에는 단 두 팀만이 이 산을 찾았다. 지난해 봄시즌에는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 8000m급 14좌 완등 레이스의 열기 속에서 한국 2개 팀을 포함, 총 8개 팀이 등반했다. 그러나 올해는 부산 팀(다이내믹 부산 2010 희망원정대)이 유일하다.
우리 팀이 카트만두를 출발한지 10일 만에 입성한 캉첸중가 남면 얄룽 빙하 베이스캠프는 최적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K2나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같이 얼음과 모레인 빙하 위도 아니고, 마칼루와 같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딱딱한 바위섬 위도 아니다. 높은 고도와 낮은 기온에 적응하려는 이끼류의 식물이 큰 둔덕 위를 융단처럼 뒤덮고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곳이다. 베이스캠프에는 바람도 적다. 이는 캉첸중가 주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탈룽, 카브루Ⅰ~Ⅳ봉까지 7000m급의 봉우리가 연결되고 남서쪽으로는 얄룽캉, 캉바첸, 자누가 병렬해 항아리형의 내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의 옥좌(玉座) 자리, 풍수지리의 안산(案山)에 보금자리가 있다.
■캉첸중가 등정 구체적 전술을 짜다
사실 우리 팀은 예년에 비해 열흘가량 일찍 출국했다. 봄시즌 네팔 히말라야에 위치한 캉첸중가와 안나푸르나1봉을 연속 등반하기 위해서는 시간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팀이 택한 루트는 1955년 영국대가 초등한 남서벽이다. 빙하와 세락이 변해 당시와는 정확히 같지는 않다. 정상부에 도달하려면 3단계 고난의 등반을 극복해야 한다. 먼저 하단부는 베이스캠프(5400m)~캠프1(6200m) 구간으로 고도차는 800m에 달한다. 낙타의 봉(Hump)처럼 형성된 설사면, 암벽, 그리고 빙벽이 가로막고 있다. 중단부는 캠프1~캠프3 구간이다. 캠프1을 출발, 거대한 빙하 위 설원지대를 건너 캠프2(6300m)에 진출한다. 여기서부터 경사가 가파른 상부 아이스폴 지대를 올라 캠프3(7100m)에 다다른다. 고도차 900m로, 이곳까지 루트 개척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정상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상단부는 캠프3~정상 구간이다. 캠프3에서 대설원 지대를 거슬러 올라 캠프4(7400m)에 진출한 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밤 10시께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다. 평균 60도 경사의 빙·설벽을 올라 8200m 지점에서 암벽지대를 횡단, 정상에 도달한다. 캠프4~정상 구간은 영하 35도를 밑도는 혹한과 강풍을 뚫고 1200여 m의 고도를 극복하며 14시간가량 올라야 한다.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등반이 9번째인 우리 팀은 두 차례의 고소적응 등반 후 등정을 시도한다는 등반계획을 수립했다. 1차 고소적응 등반은 6200m 지점의 캠프1까지, 2차는 7100m 지점의 캠프3까지, 이후 날씨가 좋아지면 정상에 오른다는 계획으로 8000m급 거봉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등반 방식이다. 경험상 8000m대의 정상에 오르려면, 그것도 산소의 도움 없이 8586m의 캉첸중가 정상에 서려면 5000m대 이상의 고도에서 최소한 20여 일간 고소에 적응해야만 가능하다.
■전진기지 '캠프1'을 설치하라
3월 28일 이른 아침. 히말라야 등반의 여명은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의 캉첸중가 베이스캠프에도 고요하게 찾아왔다. 달그락거리는 찻잔 소리가 들리면 '으레 짜이(우유차)'를 들고 쿡(요리사)인 치링이 나타난다. 우리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순백의 설산을 바라보며 그토록 고대하던 등반의 첫 날을 맞았다.
캠프1까지 루트 개척을 위해 스노우샤워 현상으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스스로 정상을 향한 길을 만들고 등짐으로 물품을 운반해야 한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데도 20㎏가량의 무거운 배낭까지 멨다. 폐는 터질듯 하고 고소증으로 머리는 어지럽다. 자신만 편하려 한다면 팀워크는 깨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비와 식량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다.
대원들은 가끔 고개를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쉰다. 히말라야 등반 최대의 적인 '희박한 공기 환경' 때문이다. 해발 5000m대의 베이스캠프는 부산의 50% 산소분압밖에 되지 않는다. 8000m대의 정상부는 30%에 불과하다.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고도를 올리는 고소순응이 필요하다. 행여 자연의 순리를 어기고 단기간에 높은 곳에 오른다면 폐부종이나 뇌수종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내의 5시간 여 만에 캉첸중가 등반의 첫 관문인 캠프1 진출에 성공한 후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고소적응, 그리고 베이스캠프 풍경
캉첸중가를 통한 우리들 자신과의 싸움을 잠시 접고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다. 오전 7시15분께 캉첸중가의 능선과 카브루봉의 능선이 만나는 안부로 해가 얼굴을 내민다. 태양은 원정대의 마음을 알아주듯 비슷한 높이의 마칼루 베이스캠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텐트를 비춰줬다.
베이스캠프는 분주해진다. 따뜻해진 텐트 안 공기는 두터운 우모복을 벗어던지고 텐트 밖으로 나가게끔 만든다. 밤새 우리 몸의 체온을 지켜주느라 눅눅해진 침낭은 일광욕을 하고, 5개의 태양광 전지판은 축전지에 전기를 모은다. 축전지에 담겨진 전기는 노트북 컴퓨터, 위성인터넷 인말세트(INMARSAT), 디지털 카메라, 무전기 등을 맘껏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얼어붙었던 빙하도 태양의 열기에 녹아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식수는 물론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세탁도 한다. 하지만 눈이 내리거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전기 사용은 불가능하고 물도 쉽게 구할 수 없다. 그러면 빙하의 얼음을 피켈로 깨내 식수를 만든다. 이때는 세안조차도 어렵다. 이곳에서는 눈을 녹여서 물을 만드는 게 연료가 가장 많이 소모되고 다음은 얼음이다. 태양이 하루를 쉬면 연료의 사용량도 그만큼 늘어난다.
베이스캠프에는 우리 팀뿐이지만 가끔 이웃이 찾아온다. 히말라야 까마귀, 황금 독수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다. 찾아 온 손님을 반갑게 맞는 건 당연한 일. 이들은 라마제단에 올려진 쌀과 참파(보리를 볶아 갈은 가루로 티베트인과 셰르파들의 주식), 그리고 주방에서 나온 음식 부스러기도 주워 먹는다. 생명체들의 모여 살아가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문명세계와의 소통은 위성전화기와 위성방식 인말세트뿐이다. 매일 오전 7시께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된 인말세트로 국내로부터 일기예보를 전송받는다. 예보관의 분석과 고도별 최대 풍속, 평균 풍속, 기온 등 그래프 데이터를 다시 점검해 분석한다. 운행계획은 전적으로 날씨에 따라 수립되고 변경된다. 캐러밴 때는 물론 베이스캠프 도착 이후 지금까지 캉첸중가 지역의 날씨는 좋았다. 이곳의 날씨 패턴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우리는 기상예보를 토대로 또다시 등정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폭설과 크레바스 뚫고 캠프3 진출
몇 년간에 걸친 네팔 히말라야 등반 경험으로 4월 중순부터 말까지 저기압의 영향으로 대설이 내리고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어 10~15일 동안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번 마칼루와 마나슬루 등반 때 2~3일 늦는 바람에 보름 이상 등정이 지연된 적이 있다. 우리는 비과학적인 경험을 토대로 등정 예정일을 4월 13~14일로 정했다.
1차 고소적응 등반이 성공리에 끝난 상황에서 우리는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안나푸르나로 향하기 위해 짐운반에 나섰다. 쾌청했던 날씨는 인간의 접근을 막으려는 듯 폭풍설을 몰고 왔다. 밤새 내린 30m 정도의 심설은 무더위와 함께 우리를 괴롭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빙하 위 설원지대를 가로질러 6300m 지점의 캠프2까지 진출, 등반에 필요한 절반가량의 짐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4월 3일. 2차 고소적응등반에 나섰다. 대원 3명이 곧바로 캠프2로 진출했다. 이튿날 캠프3로 진출을 위해 서두른다. 고산등반 능력이 탁월한 김창호 대원은 사다 상게 셰르파와 함께 루트 개척에 나서고, 김진태 서성호 대원과 니마 셰르파는 20㎏이 넘는 짐을 지고 그 뒤를 따른다. 김창호 대원은 전날 고소포터들이 잘못 설치한 고정로프를 수습하며 선등한다. 발달된 크레바스와 붕괴된 세락은 그동안 숙지했던 루트와는 달랐다. 2008년 인도 육군대에 참가했던 사다 상게 셰르파도 정확한 루트를 알지 못했다.
눈의 복사열로 30도가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악전고투하며 8시간 만인 오후 3시께 6800m 지점에 도착해 임시캠프를 설치했다. 100여 m 상단부에 텐트의 잔해들이 보였다. 하지만 굳이 고도를 높여 바람이 강하게 부는 설원에 캠프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곳을 캠프3로 정했다.
이날 우리 원정대가 준비한 고정로프 총 3500m 중 1800m가 소요됐다. 예년에 없던 크레바스와 붕괴된 세락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루트가 길어져 예상보다 1000m 이상의 고정로프가 더 소요된 것이다. 보통 8000m급 1개봉 등반을 할 수 있는 양이다.
■초속 25m 강풍… 천신만고 끝 '최종 교두보' 캠프4 설치
이튿날 오전 7시께 김창호 대원과 상게 셰르파는 캠프4까지의 루트 개척에 나섰다. 경사 50~60도가량의 빙·설벽을 돌파, 설원지대에 올라섰다. 정상부 꿀와르(협곡)에서 뻗어 내린 설원지대 위로 우뚝 솟은, 고개를 젖혀야 겨우 바라다 보이는 정상부가 설연에 휘날리고 있었다. 등반은 계속됐다. 지형은 많이 변해 있었다. 크레바스가 발달해 있다. 안자일렌으로 조심스레 캠프3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강한 바람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캠프3를 출발한지 6시간 만에 '내일의 등반'을 위해 캠프3~캠프4 중간 7300m 지점까지 진출한 후 발길을 돌렸다.
한편 김진태 서성호 대원과 니마 셰르파는 부족한 고정로프 회수 작업에 나섰다. 캠프3~캠프4~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설치할 고정로프가 바닥 난 것이다. 캠프1까지 하산한 이들은 위험하지 않은 곳에 설치된 고정로프 300여 m를 회수, 다시 캠프3로 올라왔다.
4월 6일 이른 아침 세락붕괴의 굉음과 윙윙 거리는 강풍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대원들은 다시 등반에 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으나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7000m대의 설원지대에는 초속 20~25m의 강풍이 휘몰아쳤고 기온은 영하 30도를 밑돌았다. 크레바스를 피해 고도를 높였다. 바람은 점차 강해졌다. 온몸은 얼어붙었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출발 5시간 만인 정오께 고도차 600m를 극복하고 캠프4에 당도했다. 고된 하루였지만 보람은 있었다. 정상 등정 시도를 위한 교두보인 마지막 캠프가 구축된 셈이다. 베이스캠프 도착 13일 만으로 등반을 시작한 지 불과 10일 만이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4일 만에 전원 무사히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캐러밴은 물론 루트 개척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대원들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정상 등정 시도만이 남았다. 이제 마지막의 시작인 셈이다.
◇ 세계 3위봉 캉첸중가가 '외로운 산'이 된 10가지 이유
산악인들은 캉첸중가를 외로운 산이라 평한다. 이 산의 위험한 루트를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8000m급 봉우리를 즐겨 등반하는 등반가들도 이 봉을 오르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대부분의 산악인들이 이 산을 외면하는 것일까? 히말라야 인터넷 산악소식통인 '마운틴 에베레스트'에서 지난 2005년 초등 50주년을 맞게 되는 캉첸중가에 대해 재미 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캉첸중가를 많이 찾지 않는 10가지 이유다.
① 에베레스트보다 명성이 떨어지고 K2보다는 난이도가 낮다.
② 베이스캠프까지 15일이라는 길고도 험한 캐러밴이 필요.
③ 마오이스트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해야 한다(2007년 왕정붕괴로 사라짐).
④ 어떤 루트를 선택하건 비교적 쉬운 노멀루트가 없다.
⑤ 선등한 팀의 고정로프를 사용하기보다 당신이 첫 고정로프를 깔 확률이 높다.
⑥ 이 산을 경험해 본 고소포터들이 거의 없다.
⑦ 언론이 이 산을 다루는 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보도할 때 산이름도 틀리기 일쑤다.
⑧ 정상을 오르지 못할 확률이 너무 높다.
⑨ 정상에 도달했더라도 안전하게 돌아올 확률이 매우 낮다.
⑩ 실패한 팀이 너무 많고, 치명적인 사고가 너무 위협적이기에 다른 산에 비해 스폰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많은 히말라얀 클라이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등반가의 추억이다. 세계 등반사의 아름다운 몇 페이지는 이 산에서 쓰여 졌다. 바로 그것이 명성이나 영광을 위해서만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다. 네팔 히말라야=홍보성 원정대장
악전고투… 캠프4 진출, 정상 등정만 남았다
베이스캠프서 고소적응 후 교두보 마련 나서
등정 10일만에 캠프4 확보, 크레바스·복사열 난관
전기는 태양열로, 식수 확보는 눈 얼음 녹여 해결
정상부 -35도·산소 부산의 30%… 14일께 도전
캉첸중가(8586m)는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세 번째로 많이 등반하는 산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에는 무려 74개 팀이 몰렸다. 그러나 캉첸중가 초등 50주년인 2005년에는 단 두 팀만이 이 산을 찾았다. 지난해 봄시즌에는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 8000m급 14좌 완등 레이스의 열기 속에서 한국 2개 팀을 포함, 총 8개 팀이 등반했다. 그러나 올해는 부산 팀(다이내믹 부산 2010 희망원정대)이 유일하다.
우리 팀이 카트만두를 출발한지 10일 만에 입성한 캉첸중가 남면 얄룽 빙하 베이스캠프는 최적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K2나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같이 얼음과 모레인 빙하 위도 아니고, 마칼루와 같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딱딱한 바위섬 위도 아니다. 높은 고도와 낮은 기온에 적응하려는 이끼류의 식물이 큰 둔덕 위를 융단처럼 뒤덮고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곳이다. 베이스캠프에는 바람도 적다. 이는 캉첸중가 주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탈룽, 카브루Ⅰ~Ⅳ봉까지 7000m급의 봉우리가 연결되고 남서쪽으로는 얄룽캉, 캉바첸, 자누가 병렬해 항아리형의 내원 중앙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의 옥좌(玉座) 자리, 풍수지리의 안산(案山)에 보금자리가 있다.
■캉첸중가 등정 구체적 전술을 짜다
사실 우리 팀은 예년에 비해 열흘가량 일찍 출국했다. 봄시즌 네팔 히말라야에 위치한 캉첸중가와 안나푸르나1봉을 연속 등반하기 위해서는 시간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팀이 택한 루트는 1955년 영국대가 초등한 남서벽이다. 빙하와 세락이 변해 당시와는 정확히 같지는 않다. 정상부에 도달하려면 3단계 고난의 등반을 극복해야 한다. 먼저 하단부는 베이스캠프(5400m)~캠프1(6200m) 구간으로 고도차는 800m에 달한다. 낙타의 봉(Hump)처럼 형성된 설사면, 암벽, 그리고 빙벽이 가로막고 있다. 중단부는 캠프1~캠프3 구간이다. 캠프1을 출발, 거대한 빙하 위 설원지대를 건너 캠프2(6300m)에 진출한다. 여기서부터 경사가 가파른 상부 아이스폴 지대를 올라 캠프3(7100m)에 다다른다. 고도차 900m로, 이곳까지 루트 개척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정상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상단부는 캠프3~정상 구간이다. 캠프3에서 대설원 지대를 거슬러 올라 캠프4(7400m)에 진출한 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밤 10시께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다. 평균 60도 경사의 빙·설벽을 올라 8200m 지점에서 암벽지대를 횡단, 정상에 도달한다. 캠프4~정상 구간은 영하 35도를 밑도는 혹한과 강풍을 뚫고 1200여 m의 고도를 극복하며 14시간가량 올라야 한다.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등반이 9번째인 우리 팀은 두 차례의 고소적응 등반 후 등정을 시도한다는 등반계획을 수립했다. 1차 고소적응 등반은 6200m 지점의 캠프1까지, 2차는 7100m 지점의 캠프3까지, 이후 날씨가 좋아지면 정상에 오른다는 계획으로 8000m급 거봉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등반 방식이다. 경험상 8000m대의 정상에 오르려면, 그것도 산소의 도움 없이 8586m의 캉첸중가 정상에 서려면 5000m대 이상의 고도에서 최소한 20여 일간 고소에 적응해야만 가능하다.
■전진기지 '캠프1'을 설치하라
3월 28일 이른 아침. 히말라야 등반의 여명은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의 캉첸중가 베이스캠프에도 고요하게 찾아왔다. 달그락거리는 찻잔 소리가 들리면 '으레 짜이(우유차)'를 들고 쿡(요리사)인 치링이 나타난다. 우리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순백의 설산을 바라보며 그토록 고대하던 등반의 첫 날을 맞았다.
캠프1까지 루트 개척을 위해 스노우샤워 현상으로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스스로 정상을 향한 길을 만들고 등짐으로 물품을 운반해야 한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데도 20㎏가량의 무거운 배낭까지 멨다. 폐는 터질듯 하고 고소증으로 머리는 어지럽다. 자신만 편하려 한다면 팀워크는 깨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비와 식량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다.
대원들은 가끔 고개를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쉰다. 히말라야 등반 최대의 적인 '희박한 공기 환경' 때문이다. 해발 5000m대의 베이스캠프는 부산의 50% 산소분압밖에 되지 않는다. 8000m대의 정상부는 30%에 불과하다.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고도를 올리는 고소순응이 필요하다. 행여 자연의 순리를 어기고 단기간에 높은 곳에 오른다면 폐부종이나 뇌수종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내의 5시간 여 만에 캉첸중가 등반의 첫 관문인 캠프1 진출에 성공한 후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고소적응, 그리고 베이스캠프 풍경
캉첸중가를 통한 우리들 자신과의 싸움을 잠시 접고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다. 오전 7시15분께 캉첸중가의 능선과 카브루봉의 능선이 만나는 안부로 해가 얼굴을 내민다. 태양은 원정대의 마음을 알아주듯 비슷한 높이의 마칼루 베이스캠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텐트를 비춰줬다.
베이스캠프는 분주해진다. 따뜻해진 텐트 안 공기는 두터운 우모복을 벗어던지고 텐트 밖으로 나가게끔 만든다. 밤새 우리 몸의 체온을 지켜주느라 눅눅해진 침낭은 일광욕을 하고, 5개의 태양광 전지판은 축전지에 전기를 모은다. 축전지에 담겨진 전기는 노트북 컴퓨터, 위성인터넷 인말세트(INMARSAT), 디지털 카메라, 무전기 등을 맘껏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얼어붙었던 빙하도 태양의 열기에 녹아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식수는 물론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세탁도 한다. 하지만 눈이 내리거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전기 사용은 불가능하고 물도 쉽게 구할 수 없다. 그러면 빙하의 얼음을 피켈로 깨내 식수를 만든다. 이때는 세안조차도 어렵다. 이곳에서는 눈을 녹여서 물을 만드는 게 연료가 가장 많이 소모되고 다음은 얼음이다. 태양이 하루를 쉬면 연료의 사용량도 그만큼 늘어난다.
베이스캠프에는 우리 팀뿐이지만 가끔 이웃이 찾아온다. 히말라야 까마귀, 황금 독수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다. 찾아 온 손님을 반갑게 맞는 건 당연한 일. 이들은 라마제단에 올려진 쌀과 참파(보리를 볶아 갈은 가루로 티베트인과 셰르파들의 주식), 그리고 주방에서 나온 음식 부스러기도 주워 먹는다. 생명체들의 모여 살아가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문명세계와의 소통은 위성전화기와 위성방식 인말세트뿐이다. 매일 오전 7시께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된 인말세트로 국내로부터 일기예보를 전송받는다. 예보관의 분석과 고도별 최대 풍속, 평균 풍속, 기온 등 그래프 데이터를 다시 점검해 분석한다. 운행계획은 전적으로 날씨에 따라 수립되고 변경된다. 캐러밴 때는 물론 베이스캠프 도착 이후 지금까지 캉첸중가 지역의 날씨는 좋았다. 이곳의 날씨 패턴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우리는 기상예보를 토대로 또다시 등정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폭설과 크레바스 뚫고 캠프3 진출
몇 년간에 걸친 네팔 히말라야 등반 경험으로 4월 중순부터 말까지 저기압의 영향으로 대설이 내리고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어 10~15일 동안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 번 마칼루와 마나슬루 등반 때 2~3일 늦는 바람에 보름 이상 등정이 지연된 적이 있다. 우리는 비과학적인 경험을 토대로 등정 예정일을 4월 13~14일로 정했다.
1차 고소적응 등반이 성공리에 끝난 상황에서 우리는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 안나푸르나로 향하기 위해 짐운반에 나섰다. 쾌청했던 날씨는 인간의 접근을 막으려는 듯 폭풍설을 몰고 왔다. 밤새 내린 30m 정도의 심설은 무더위와 함께 우리를 괴롭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빙하 위 설원지대를 가로질러 6300m 지점의 캠프2까지 진출, 등반에 필요한 절반가량의 짐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4월 3일. 2차 고소적응등반에 나섰다. 대원 3명이 곧바로 캠프2로 진출했다. 이튿날 캠프3로 진출을 위해 서두른다. 고산등반 능력이 탁월한 김창호 대원은 사다 상게 셰르파와 함께 루트 개척에 나서고, 김진태 서성호 대원과 니마 셰르파는 20㎏이 넘는 짐을 지고 그 뒤를 따른다. 김창호 대원은 전날 고소포터들이 잘못 설치한 고정로프를 수습하며 선등한다. 발달된 크레바스와 붕괴된 세락은 그동안 숙지했던 루트와는 달랐다. 2008년 인도 육군대에 참가했던 사다 상게 셰르파도 정확한 루트를 알지 못했다.
눈의 복사열로 30도가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악전고투하며 8시간 만인 오후 3시께 6800m 지점에 도착해 임시캠프를 설치했다. 100여 m 상단부에 텐트의 잔해들이 보였다. 하지만 굳이 고도를 높여 바람이 강하게 부는 설원에 캠프를 옮길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곳을 캠프3로 정했다.
이날 우리 원정대가 준비한 고정로프 총 3500m 중 1800m가 소요됐다. 예년에 없던 크레바스와 붕괴된 세락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루트가 길어져 예상보다 1000m 이상의 고정로프가 더 소요된 것이다. 보통 8000m급 1개봉 등반을 할 수 있는 양이다.
■초속 25m 강풍… 천신만고 끝 '최종 교두보' 캠프4 설치
이튿날 오전 7시께 김창호 대원과 상게 셰르파는 캠프4까지의 루트 개척에 나섰다. 경사 50~60도가량의 빙·설벽을 돌파, 설원지대에 올라섰다. 정상부 꿀와르(협곡)에서 뻗어 내린 설원지대 위로 우뚝 솟은, 고개를 젖혀야 겨우 바라다 보이는 정상부가 설연에 휘날리고 있었다. 등반은 계속됐다. 지형은 많이 변해 있었다. 크레바스가 발달해 있다. 안자일렌으로 조심스레 캠프3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강한 바람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캠프3를 출발한지 6시간 만에 '내일의 등반'을 위해 캠프3~캠프4 중간 7300m 지점까지 진출한 후 발길을 돌렸다.
한편 김진태 서성호 대원과 니마 셰르파는 부족한 고정로프 회수 작업에 나섰다. 캠프3~캠프4~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설치할 고정로프가 바닥 난 것이다. 캠프1까지 하산한 이들은 위험하지 않은 곳에 설치된 고정로프 300여 m를 회수, 다시 캠프3로 올라왔다.
4월 6일 이른 아침 세락붕괴의 굉음과 윙윙 거리는 강풍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대원들은 다시 등반에 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으나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7000m대의 설원지대에는 초속 20~25m의 강풍이 휘몰아쳤고 기온은 영하 30도를 밑돌았다. 크레바스를 피해 고도를 높였다. 바람은 점차 강해졌다. 온몸은 얼어붙었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출발 5시간 만인 정오께 고도차 600m를 극복하고 캠프4에 당도했다. 고된 하루였지만 보람은 있었다. 정상 등정 시도를 위한 교두보인 마지막 캠프가 구축된 셈이다. 베이스캠프 도착 13일 만으로 등반을 시작한 지 불과 10일 만이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4일 만에 전원 무사히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캐러밴은 물론 루트 개척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대원들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정상 등정 시도만이 남았다. 이제 마지막의 시작인 셈이다.
◇ 세계 3위봉 캉첸중가가 '외로운 산'이 된 10가지 이유
산악인들은 캉첸중가를 외로운 산이라 평한다. 이 산의 위험한 루트를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8000m급 봉우리를 즐겨 등반하는 등반가들도 이 봉을 오르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면 왜 대부분의 산악인들이 이 산을 외면하는 것일까? 히말라야 인터넷 산악소식통인 '마운틴 에베레스트'에서 지난 2005년 초등 50주년을 맞게 되는 캉첸중가에 대해 재미 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캉첸중가를 많이 찾지 않는 10가지 이유다.
① 에베레스트보다 명성이 떨어지고 K2보다는 난이도가 낮다.
② 베이스캠프까지 15일이라는 길고도 험한 캐러밴이 필요.
③ 마오이스트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해야 한다(2007년 왕정붕괴로 사라짐).
④ 어떤 루트를 선택하건 비교적 쉬운 노멀루트가 없다.
⑤ 선등한 팀의 고정로프를 사용하기보다 당신이 첫 고정로프를 깔 확률이 높다.
⑥ 이 산을 경험해 본 고소포터들이 거의 없다.
⑦ 언론이 이 산을 다루는 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보도할 때 산이름도 틀리기 일쑤다.
⑧ 정상을 오르지 못할 확률이 너무 높다.
⑨ 정상에 도달했더라도 안전하게 돌아올 확률이 매우 낮다.
⑩ 실패한 팀이 너무 많고, 치명적인 사고가 너무 위협적이기에 다른 산에 비해 스폰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많은 히말라얀 클라이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등반가의 추억이다. 세계 등반사의 아름다운 몇 페이지는 이 산에서 쓰여 졌다. 바로 그것이 명성이나 영광을 위해서만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다. 네팔 히말라야=홍보성 원정대장